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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I의 가장 보통의 하루

마지막 출근날의 기분. 퇴사한 날의 기록

by KIKI (키키)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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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출근날 느꼈던 감정이 다 날아가기 전에,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려고 한다.
나의 마지막 출근은 5/13. 그날의 기록을 이곳에 남겨두고 싶다.



1. 날씨 좋은 날 마지막 출근


 마지막 출근날은 선선했고, 바람이 시원한 여름이 다가오는 날씨였다. 아주 좋은 날씨였다. 비까지 왔으면 짐이 많아서 너무 슬펐을 것 같은데, 다행스럽게 날씨는 나를 도와주었다. 그날 아침은 어느 날과 같았다 그냥 분위기가 조금 달랐을 뿐. 마지막 날까지 실무를 했다. 끝까지 실무를 시키던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평소 근무할 때도 사무실에서 욕(육두문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후배들을 손으로 때리고 치는 사람이라 큰 기대가 없었는데, 그렇게 마지막까지 일을 시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정신과 약까지 드시는 분이었으니, 아무래도 정상 상태인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을 했던 것 같다. 다음 후배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분이 꼭 정신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상사와 있을 때는 그런 증상들이 발현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선택적 분노조절장애이기 때문에 치료가 안될 수도 있다) 인수인계는 일주일 전부터 했는데 같은 기수 동기가 우리 팀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동기에게 해 주었다. 사실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는 동기인데, 내가 퇴사한 이후에도 내 일을 할 게 많아서 고생했다는 소리를 했다.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만큼 일이 많았던걸 어떡해...

마지막 배웅은 잊혀지지 않는다.

 

2. "나는 아직 퇴사를 안 해봐서 몰라. 기분이 어때?"


 퇴사하는 날, 퇴근길을 팀원들이 배웅해 주었다. 그리고 회사를 나가는 길에 이 얘기를 들었다. "나는 아직 퇴사를 안 해봐서 몰라. 기분이 어때?" 인생 첫 사수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웃기만 했다.


 기쁘면서 슬프고, 후련하면서 아쉬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나와 친하게 지내던 동기 4명이 기다리고 있어 줬다. 동기들에게 달려가는 순간 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왔다. 동기들은 너무 수고 많았다며 안아주었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어른이 된 이후 오랜만에 엉엉 울었다. 다 울고 난 뒤 나를 배웅하러 나와준 팀원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도 몇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추억의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을 기록한 사진인 것 같아서 그 사진은 참 많은 의미가 있다. 팀원들의 배웅을 마지막으로 회사 사무실에는 이제 들어갈 일이 없을 것이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게 되면 그때는 꼭 다시 들어가 보고는 싶다.


3. 동기들의 깜짝파티


그렇게 회사 앞에서 엉엉 울고 난 뒤, 회사를 뒤로하고 여의도 공원으로 걸어갔다. 친한 동생 두 명과 함께 걸어갔는데 그중 한 명이 갑자기 케이크 얘기를 꺼내서 깜짝 파티해주려나 보다. 생각했다. 너무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케이크 얘기를 꺼내서 모르는 척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셋이 택시를 타고 파티 장소로 향했다. 종각 코다차야였는데 가는 길에 붉은 노을이 지며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내 회사 생활이 끝이 나고, 다시 미래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둠 뒤에 다시 해는 뜨니까, 나도 어둠을 지나 다시 밝게 떠 오를 준비를 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굳게 결심했던 것 같다. 이렇게 소중한 동기들을 뒤로하고 사회로 다시 나가는 만큼 꼭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성공해야겠다고.

정말 많은 인원이 와서 나의 퇴사를 축하해 주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날이었으니, 등산도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등산을 못 간 게 아직도 후회된다.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못 갔다. 동기들을 위해 샘플을 따로 준비하느라도 조금 늦었던 것인데, 다음에 듣고 보니 그 샘플들은 모두 없어진 것 같다. 흑흑, 울면서 그 샘플들을 챙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차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코다차야에 갔고, 코다차야에서 역시 깜짝파티로 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하하 ! 2차로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까지 같이 남아줬던 동기들은 집 가는 길에 택시가 없어서 너무너무 고생했다. 많은 동기가 남아서 내가 퇴사하는 날을 축하해 주니, 그래도 회사생활을 못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신나게 다 논 뒤에는 내가 가장 많이 심적으로 기댔던 고마운 언니의 집에서 잠을 잤다. 언니가 그날 밤 같이 잠에 들기 전에 아직 어리니, 여러가지 길을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감정적으로 공감해주고 위로하기 보다는 가끔 너무 솔직한 언니의 말에서 위로를 느낄때가 많았다. 그리고 언니가 마녀배달부 키키라는 영화를 틀어줬는데, 마치 내 첫 직장생활때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그리고 그 언니는 나에게 극혐 kiki라는 별명을 지어줬다..^^ㅋ) 그리고 그 KIKI는 나의 인테넷 활동 닉네임이 되었고, 이 생활을 포기하고 싶거나, 꿈을 접어두고 현실과 타협하고 싶을때 닉네임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차가워 보이지만 제일 따스한 그런 언니였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맙다. 아마 동기들이 없었다면, 1년도 채 안 되어서 퇴사했을 수도 있다. 모두 함께 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도 잘할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은 시작되었지만, 곧 해가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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